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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전 세게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스포츠가 있습니다. 인간과 AI가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진검승부를 벌였죠. 결과는 알파고 AI가 이세돌로부터 4승 1패로 승리를 거뒀습니다. 당시 바둑계 1위였던 이세돌이 완패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SF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AI가 사람을 완벽하게 초월해버리는 모습마저 떠오르게 했죠.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양 업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바둑계에서는 AI의 우수성을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선수들의 기량 육성에 힘쓰기도 했죠. 대중들에게도 바둑의 수요가 급증하여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알파고는 명예 프로 九 단을 수여 받았으며, MIT가 선정한 ‘2016년에 주목할 10대 혁신 기술’에 선정되는 영광을 받았습니다. 양쪽 업계가 긍정적인 시너지를 받은 셈이죠.
세기의 바둑 대국이 끝난 후 알파고는 무수한 관심을 받으며 세상을 바꿀 행보를 이어나갔습니다. ‘알파 제로’, ‘알파 텐서’ 등 구글 딥마인드 팀은 AI에 더 빠른 알고리즘을 투입시키며 연산 속도 발전에 박차를 가했죠. 하지만 최근 알파고의 근황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 예측 적중률로 ‘실패작’ 낙인이 찍혀버린 것이죠. 세상을 뒤흔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알파고의 뒷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세기의 대국이 끝난 이듬해 2017년, 알파고는 먼저 구글의 데이터 센터 전력을 절감하는 프로젝트에 투입되었습니다. 구글이 소모하는 전력은 2014년 기준 4.4테라와트로 매우 높았습니다. 이는 미국에서 36만 가구가 소비하는 전력과 비슷한 수준이었죠. 이 중에서 많은 부분이 데이터 센터의 냉각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데이터 센터의 냉각을 포기할 수는 없었으며, 쉽게 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당장 대한민국을 멈추게 한 2022년 10월, 카카오 역시 냉각 솔루션의 문제로 발생한 데이터 센터 화재 사건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기도 했었죠.
구글 데이터 센터의 알파고는 공장 전력에 영향을 주는 팬과 창문, 냉각 시스템 등 120여 가지의 변수를 미세하게 조정하여 변수를 절감했습니다. 마침내 냉각 비용도 40%를 감소시키는 성과를 얻었으며, 결과적으로 전체의 전력 소비가 15%가량 줄어드는 쾌거를 기록했습니다. 중간에 인력이 투입되지 않았음에도 안전하고 효율적인 냉각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죠. 이는 당시 AI가 여러 분야에서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출 수 있음을 증명하는 자료가 되었습니다.
이에 알파고는 다양한 분야에서 AI의 기능 강화와 효율적인 시스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몸풀기 운동이 끝났으니, 이제 국가 단위의 시스템 제어에 도전해야 할 시기였죠.
알파고의 개발자 구글 딥마인드는 전력 효율화를 통한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추가적인 학습을 시작했습니다. 구글 데이터 센터의 전력을 40% 이상 절감시킨 성과를 거울삼아,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죠. 구글은 ‘딥마인드 에너지’라는 팀을 구성하여 영국 국영 내셔널 그리드 (National Grid PLC)와 협업을 시작했습니다. 목표는 영국 국가 전력 사용량의 10%를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20년에 프로젝트 자체가 무산되면서 팀이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미국 경제뉴스 CNBC에 따르면, 딥마인드 기술은 바둑이나 체스 같은 게임처럼 통제된 환경과 정립된 룰이 있으면 제대로 작동하지만 보다 고차원적인 상황에서는 그렇지 못했다고 합니다. 현실 세계의 복잡성과 예측 불가의 미래가 결합되면서 오히려 성능에 대한 의구심만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죠.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프로젝트를 지속해 볼 만한 가능성은 확실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전력 시스템과 비교해도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이 앞길을 막았죠. 또한 잘못된 예측으로 인한 변수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들에 대한 책임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딜레마였습니다.
방대한 데이터의 변수와 예측 불가능한 정보를 컨트롤하는 것이 인류가 AI에게 바라는 목표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알파고가 보여준 가능성에서 이 미래를 엿보기엔 어려웠습니다. 또한 구글은 알파고 이외에도 딥마인드 팀에서 개발한 AI 기기들에 대해 상업성의 이유로 대부분 시장에 출범하지 못했습니다.
알파고는 이세돌과 네 번째 대국에서 첫 패배를 맛본 후, 영국의 전력 효율화 계획에서 두 번째 패배의 쓴맛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구글은 이후 후속 모델인 ‘알파 폴드’를 통해 생명과학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딥마인드의 최고 경영자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가 기후 변화 대응과 함께 주요 과제로 발표했던 ‘생명 현상 예측’ 분야에서 활약을 하기도 했죠.
알파 폴드가 단백질 구조 분석에 성공하면서, 10년간 풀지 못했던 단백질의 구조 문제를 30분 만에 해결해 전 세계의 관심을 샀습니다. 미래에는 며칠 내내 끊임없이 실험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기존 치료제에서 몇 시간 만에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알파고는 학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방대해진 빅데이터에 당장은 기권한 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AI가 모든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기 시작했죠. AI가 고도화된 지금에도, 인간과 AI가 합작하는 ‘휴먼인더루프’ 방식이 빛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데이터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오류를 사람의 손으로 컨트롤하는 것이 더 정확한 결과물을 낼 수 있다는 반증이죠.
AI는 기적의 상자가 아닙니다. 인간을 초월해 어마어마한 학습 능력을 자랑하지만, 실패를 거듭해 더 나은 모델이 된다는 점에서는 인간의 과정을 닮아있죠. 설령 좌절을 맛본다고 해도 새로운 분야에서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데이터헌트는 이 역사를 잊지 않고 거울삼아 더 나은 AI 솔루션을 제공할 것을 약속합니다.